통증 치료제 임상시험, 왜 어렵고 빈번히 실패하는가

 

“통증은 죽음보다도 더 무서운 인류의 지배자다. (Pain is a more terrible lord of mankind than even death himself.)”

 

의사이자 사상가인 알베르트 슈바이처가 남긴 말이다.

 

통증은 인류가 겪는 가장 보편적인 고통 중 하나다. 이를 줄이기 위한 수많은 진통제가 사용되고 있지만, 새로운 통증 치료제의 효과와 안전성을 입증하는 임상시험은 여전히 어렵다. “아픈 사람에게 약을 투여해 통증이 줄어들면 성공 아닌가”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 임상개발의 성적은 그리 낙관적이지 않다.

 

2000년부터 2020년 상반기까지의 개발 자료를 분석한 연구에서, 통증 치료제가 임상 1상에 진입한 뒤 승인에 도달할 확률은 10.4%로 추정됐다. 신경병성 통증 치료제는 7.1%, 비마약성 진통제와 같은 남용 가능성 (low abuse potential)이 낮다고 분류한 약물은 4.7%였다. 단계별로는 이미 막대한 시간과 비용이 투입된 3상에서 승인에 이르는 구간에서 개발 중단이 가장 두드러졌다. 다만 이러한 개발 중단에는 효능·안전성뿐 아니라 사업적 판단도 영향을 줄 수 있다.

 

통증 치료제 임상시험에는 어떤 구조적 어려움이 있을까. 특히 만성통증 임상시험을 중심으로, 생물학·심리학·통계학을 함께 고려해야 하는 10가지 난제를 살펴본다.

 

1. 통증의 본질적 주관성과 측정의 한계

통증 치료제 임상시험의 가장 근본적인 어려움은 통증이 사람이 느끼고 표현하는 개인적 경험이라는 점이다. ‘The Body in Pain’의 저자 일레인 스캐리 (Elaine Scarry)는 “To have great pain is to have certainty; to hear that another person has pain is to have doubt”라고 썼다. 극심한 통증을 겪는 사람에게 고통은 확실한 현실이지만, 타인은 그 경험을 온전히 알기 어렵다는 뜻이다.

 

통증과 관련된 생리적 지표나 영상 지표는 연구되고 있지만, 환자의 통증 경험을 보편적으로 대체할 객관적 지표는 아직 확립되지 않았다. 따라서 스스로 보고할 수 있는 환자에서는 통증 강도에 대한 자가보고가 핵심 평가 방법이다. 주관적이라는 이유만으로 그 보고의 타당성이 낮아지는 것은 아니다.

 

다만 같은 자극에도 개인마다 느끼는 통증이 다르고, 같은 환자의 통증도 활동·수면·기분·기대 등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여기에 회상 오류나 평가 방법에 대한 이해 차이가 더해지면 측정 변동성이 커진다. 중요한 것은 실제 증상의 변화와 측정 과정에서 발생한 오류를 가능한 한 구분하는 일이다.

 

2. ‘통증 감소’와 ‘삶의 개선’ 사이의 간극

통증이 지속되거나 조절되지 않으면 수면, 움직임, 정서, 대인관계와 일상생활 전반에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통증 점수의 감소는 중요한 치료 성과이지만, 그것만으로 환자의 삶이 얼마나 개선됐는지를 모두 설명할 수는 없다.

 

IMMPACT(Initiative on Methods, Measurement, and Pain Assessment in Clinical Trials)는 만성통증 임상시험의 핵심 평가 영역으로 통증, 신체 기능, 정서 기능, 환자의 전반적 호전도 및 치료 만족도, 증상과 이상반응, 참여자 추적 및 치료 이행 관련 정보를 제시했다.

 

통증이 줄어도 기능 회복이 늦어질 수 있고, 통증 감소의 크기가 비슷해도 환자가 체감하는 이득은 다를 수 있다. 따라서 임상시험 목적에 맞는 일차 평가변수를 정하되, 기능과 삶의 질, 안전성을 함께 평가해야 한다. 모든 영역에서 동시에 유의한 차이를 보여야 한다는 뜻은 아니며, 통계적 유의성과 환자에게 의미 있는 개선을 구분해 해석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처럼 ‘무엇을 진정한 치료 효과로 정의할 것인가’라는 근본적인 설정 자체가 개발 난이도를 높이는 원인이다.

 

3. 약효 검출을 어렵게 하는 높은 위약반응

통증 임상시험에서는 위약군에서도 상당한 호전이 나타날 수 있다. 환자의 기대, 의료진과의 상호작용, 과거의 치료 경험 등이 통증 경험과 보고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다만 ‘위약반응(placebo response)’과 ‘위약효과(placebo effect)’는 구분해야 한다. 위약군에서 관찰되는 변화 (위약반응)에는 기대 등에 따른 위약효과뿐 아니라 자연 경과, 평균으로의 회귀, 병용치료의 영향도 포함된다.

 

1990~2013년에 발표된 신경병성 통증 임상시험을 분석한 연구에서는 미국에서 수행된 시험의 위약반응이 시간이 지날수록 커지는 경향이 관찰됐다. 최근 한 보도에 따르면 국내사가 미국에서 대규모로 진행한 무릎 관절 통증 임상시험에서 긍정적인 결과를 얻지 못했는데, 이례적으로 높은 위약반응을 이유로 들었다.

 

위약반응이 높고 시험약과의 차이가 작아지면 약물의 추가적인 치료효과를 검출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 그렇다고 통계적으로 유의한 차이가 없었던 시험을 곧바로 “효과는 있었지만 위약반응 때문에 실패했다”고 해석하기 보다는 약효 부족, 용량, 대상자 선정, 평가 방법과 시험 수행의 문제를 함께 검토해야 한다.

 

4. 이중눈가림을 유지하기 어려운 이유

통증 치료제는 졸림, 어지럼, 오심 등 특징적인 이상반응을 일으킬 수 있다. 이로 인해 참여자나 연구자가 시험약과 위약 중 어느 치료를 받는지 추측하게 되면 눈가림이 약해질 수 있다.

 

환자의 자가보고가 일차 평가변수인 시험에서는 치료 배정에 대한 추측이 기대와 통증 보고에 영향을 줄 수 있다. 또한 연구자의 평가, 병용치료 결정, 추적 관찰에도 편향이 생길 수 있다. 따라서 제형과 투여 방법을 가능한 한 일치시키고, 치료군을 암시하는 설명을 피하며, 필요한 경우 안전성 관리와 효과 평가의 역할을 분리하는 등 눈가림 유지 방안을 설계 단계부터 마련해야 한다.

 

5. 구제진통제 사용의 딜레마

참여자의 통증을 적절히 관리하기 위해 많은 임상시험에서는 구제진통제 (rescue medication) 사용을 허용한다. 그러나 구제진통제는 이후의 통증 점수에 영향을 주므로, 시험약의 효과를 해석하는 데 복잡성을 더한다.

 

구제약 사용을 지나치게 폭넓게 허용하면 치료군 간 차이가 줄어들 수 있고, 과도하게 제한하면 참여자의 고통과 중도 탈락이 늘어날 수 있다. 따라서 허용 약물과 용량, 투여 조건을 표준화하고, 사용량과 시점, 통증 평가와의 시간적 관계를 기록해야 한다.

 

구제진통제 사용 이후의 자료를 어떻게 해석할지도 미리 정해야 한다, 연구가 답하려는 질문과 추정대상모수 (estimand)에 맞춰 분석에서 다루는 방식을 사전에 명시하는 것이 중요하다.

 

6. 환자군의 생물학적·임상적 이질성

통증은 다른 질환의 증상일 수 있지만, 일부 만성통증은 그 자체로 질환으로 분류된다. ICD-11의 만성 일차성 통증이 대표적인 예이다. 따라서 통증을 언제나 ‘질환이 아닌 증상’으로만 설명하는 것은 정확하지 않다.

 

같은 만성 요통 환자라도 침해수용성 통증 (Nociceptive pain), 신경병성 통증 (Neuropathic pain), 통각가소성 통증 (Nociplastic pain)의 기여도가 다를 수 있으며, 수면·정서·사회적 요인도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이처럼 서로 다른 기전과 특성을 가진 환자가 한 시험에 포함되면 특정 기전에 작용하는 약물의 평균 치료효과가 작게 나타날 수 있다.

 

이를 줄이려면 임상적 특성과 감각 증상 등을 바탕으로 환자 표현형을 구체화하고, 적절한 경우 생체표지자를 활용해야 한다. 다만 약물 반응을 정확히 예측하는 표지자가 모든 통증 질환에서 확립된 것은 아니므로, 탐색적 지표와 검증된 선정 기준을 구분해야 한다.

 

7. 전임상 결과를 사람에게 적용하는 중개연구의 간극

동물 모델에서 나타난 진통 효과가 사람에게서 충분히 재현되지 않는 경우가 빈번하다. 실험동물 모델은 통증을 유발할 수 있는 유해 자극에 대한 생리학적 반응만을 단순히 측정하는 경우가 많은데 반하여, 인간의 통증 임상시험은 각 개인 별 인지, 감정, 기억, 사회적 맥락이 복잡하게 얽힌 고차원적 경험의 인구집단 총합이기 때문이다.

 

핵심 문제는 동물 모델이 사람의 질환과 평가 상황을 얼마나 충실히 반영하는가에 있다. 동물시험에서 흔히 측정하는 유발 자극에 대한 회피 반응은 사람이 겪는 자발통이나 일상 기능의 제한과 완전히 일치하지 않는다. 종간 차이, 질환의 지속 기간, 약물 노출 수준 등도 결과에 영향을 준다.

 

약물이 표적에 도달하고 의도한 생물학적 작용을 일으켰는지 확인할 지표가 부족하면, 실패의 원인이 표적 자체인지, 용량인지, 환자 선정인지 구분하기 어렵다. 따라서 사람과 동물에서 연결해 해석할 수 있는 평가 도구와 약동학·약력학 근거를 함께 확보해야 한다.

 

8. 대상자 선정과 약효 검출 능력 사이의 균형

기저 통증이 너무 낮으면 추가로 감소할 여지가 적어 치료효과를 검출하기 어렵다. 이에 일부 만성통증 임상시험에서는 0~10점 숫자평가척도(NRS)의 평균 통증 강도가 4점 이상인 환자를 등록한다. 그러나 이를 모든 통증 시험에 적용되는 IMMPACT의 일률적 기준으로 제시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기준은 대상 질환, 치료 기전과 시험 목적에 맞춰 정해야 한다.

 

선정 기준을 엄격하게 할수록 모집이 어려워지고, 결과를 실제 진료의 다양한 환자에게 적용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 반대로 지나치게 폭넓은 등록은 치료효과를 희석할 수 있다. 따라서 실제 효과를 구별해 내는 시험의 능력인 검출 감도(assay sensitivity)와 결과의 일반화 가능성 사이에서 균형을 찾아야 한다.

 

한 번의 방문 점수에만 의존하기보다 기저 관찰 기간 동안 일별 통증을 기록해 평균 수준과 변동성을 확인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참여 환자에 대한 평가 교육은 특정 점수나 인위적으로 일정한 점수를 유도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 통증 경험을 일관된 기준과 방법으로 보고하도록 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

 

9. 중도 탈락과 결측 자료가 만드는 편향

통증 임상시험에서는 효과 부족, 이상반응, 참여 부담 등으로 치료를 중단하거나 평가 자료가 누락될 수 있다. 이러한 사유는 치료 반응과 관련될 수 있으므로, 남아 있는 참여 환자의 자료만 분석하면 치료효과가 과대 또는 과소 추정될 수 있다.

 

시험약 투여 중단과 연구의 추적 관찰 중단도 구분해야 한다. 참여자의 동의와 안전을 전제로, 연구 목적에 필요한 경우 투약 중단 후에도 평가를 지속하면 결측을 줄일 수 있다.

 

분석 방법은 추정대상과 결측 발생에 대한 가정에 맞춰 사전에 정해야 한다. 결측값을 단순히 직전 관측값으로 채우는 방식에 의존하기보다, 적절한 모형과 민감도 분석을 통해 가정이 달라져도 결론이 유지되는지 확인해야 한다.

 

10. 대조군 설정과 효과의 일관성 가정

기존 치료제와의 비열등성을 평가하려면, 그 치료제가 과거 시험에서 보인 효과가 현재 시험에서도 충분히 유지된다는 일관성 가정 (constancy assumption)이 필요하다. 환자군, 병용치료, 평가 방법과 시험 수행이 달라지면 이 가정이 성립하지 않을 수 있다.

 

검출 감도가 부족한 임상시험에서는 두 치료가 모두 효과를 보이지 못해도 비슷한 결과가 나올 수 있다. 따라서 “기존 약과 차이가 없다”는 결과만으로 시험약의 유효성이 입증되는 것은 아니다.

 

윤리적으로나·실무적으로 가능하다면 시험약, 활성대조약, 위약의 3군 설계가 효과 해석과 검출 감도 평가에 도움을 줄 수 있다. 대조군은 표준치료, 환자 보호, 과거 근거와 연구 목적을 종합해 결정해야 하며, 대조군 추가에 따른 규모와 비용도 고려해야 한다.

 

성공 가능성을 높이려면 설계·수행·분석을 함께 개선해야 한다

 

통증 치료제 임상시험의 성공 가능성을 높이려면 약물의 유효성과 안전성을 평가할 과학적 설계, 비교 가능한 치료군, 신뢰할 수 있는 측정 자료가 함께 갖춰져야 한다. 풍부한 임상개발 경험과 통찰 (Insight)이 반영된 계획서, 적절한 무작위배정과 전자일지는 이러한 조건을 구현하는 데 기여한다. 목표는 실제 치료효과가 설계의 불일치나 측정 오류에 가려질 위험을 줄이고, 개발 의사결정에 필요한 근거를 확보하는 것이다.

 

설계 단계에서는 다섯 가지를 고려해야 한다. 첫째, 치료 기전에 맞는 환자 표현형과 근거가 충분한 생체표지자를 활용해 대상자를 선정한다. 둘째, 위약반응에 영향을 주는 요인을 관리한다. 셋째, 질환과 치료법에 적합하고 타당도·신뢰도·변화 민감도가 확보된 통증 평가변수 및 측정 수단 (tool)을 선택한다. 넷째, 기능·삶의 질·안전성 등 환자에게 중요한 결과를 함께 측정한다. 다섯째, 구제진통제 사용이나 투약 중단을 어떻게 다룰지 포함해 연구 질문에 부합하는 추정대상모수를 명확히 정의한다.

 

무작위배정 방법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기저 통증 강도처럼 치료 후 결과와 관련된 예후인자가 치료군 사이에 우연히 불균형하게 분포하면 효과 추정의 정밀도와 해석이 영향을 받을 수 있다. MSB(minimal sufficient balance)는 사전에 정한 공변량의 불균형이 허용 기준을 넘을 때, 균형을 개선하는 방향으로 배정 확률을 조정하는 방법이다.

 

수행 단계에서는 무엇보다 치료에 따른 변화를 민감하고 신뢰성 있게 포착하는 측정 수단을 갖춰야 한다. 전자일지 (Electronic diary, eDiary)는 이를 지원하는 유용한 도구로서 현대 임상시험 데이터 수집(Modern clinical trial data collection)의 핵심으로 자리 잡고 있다. 정해진 시간의 입력 알림, 입력 시각 기록, 소급 입력 제한, 누락 확인 등의 기능은 회상 오류와 뒤늦은 일괄 기록을 줄이고 자료의 추적 가능성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되며, 전자일지를 통한 실시간 데이터 수집을 통해 환자의 기억 편향 및 End-digit bias와 데이터 기입 지연에 따른 노이즈, 결측을 줄여 줄 수 있으며, 결과적으로 치료효과 추정의 정밀도와 검정력 개선에 기여할 수 있다.

 

분석 단계에서는 기저 통증 등 사전에 정한 예후 관련 공변량을 적절히 반영하고, 선택한 추정대상에 맞춰 구제진통제 사용과 결측 자료를 처리해야 한다. 효과의 크기와 신뢰구간, 임상적 의미를 함께 제시하고, 민감도 분석으로 결론의 견고성을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

 

성공적인 통증 치료제 개발 임상시험을 위한 제언- ‘심유(Symyoo)’의 임상개발 경험과 시스템을 함께 활용한다

 

심유는 풍부한 임상개발 경험을 갖춘 의사 출신 메디컬 라이터와 통계학자가 협력해 임상시험계획서를 작성하며, MSB 방식을 구현한 자체 개발 무작위배정 시스템과 전자일지를 보유하고 있다. 이러한 역량을 함께 활용하면, 치료 기전과 환자 특성에 맞춘 설계를 배정,·측정,·분석 절차로 일관되게 구현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예방 가능한 편향과 정보 손실을 줄이고, 실제 치료효과를 신뢰성 있게 평가함으로써 통증 치료법 개발의 성공 가능성을 높이는 데 기여하고자 한다.

 

 

유동진 | C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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